나는 매일 새벽 운동을 다닌다.
새벽 운동 가는 길에
노인복지회관을 지나간다.
그 노인복지회관 정문 맞은 편에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가 하나 놓여져 있다.
새벽마다
한 할아버지 한분이 양복을 곱게 입으시고 그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계신다.
깜깜한 새벽 길에 내가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 할아버지는 꼬고 계시던 다리를 풀고 앉으셨다가
내가 지나가면 다리를 다시 꼬고 앉으셨다.
몇 번을 지나가도 지나갈 때 마다 너무나 겸손하게 다리를 푸셔서
좀 무안했다.
하루는 내가 지나가면서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서서 인사를 해주신다.
적지 않은 나의 나이의 곱절이나 되어 보이시는 분이
넘 정중히 인사를 해주셔서 더 민망하였다.
그래서 그 다음날 부터는 너무나 당연히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러기를 몇일....
할아버지가 새벽 운동 가면서 인사를 하던 나를 부르셨다.
" 잠깐만....차한잔 하고 가요."
바쁜 일도 없고.... 그간 정중한 인사를 받은 것도 고맙고 미안하고 해서...
"네 "하고 옆에 앉았더니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커피를 컵에 따라 주시고...
나는 컵을 받아 커피를 마셨다.
" 무슨일 하셨나요?"
궁금해서 여쭤보니...
" 저는 평생 공직에 있었어요.... 그래도 이나이 먹도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하신다.
진리를 배우는 방법도 어떻게 하면 하나도 모르게 되는지.... 인데....^^
"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정말 많이 아시는 거잖아요."
말씀드리니....
" 웃으셨다."
그리고 커피 잘 마셨다고 컵을 돌려드리고 운동을 하러 갔고...
할아버지는 잘가라고 하셨다.
다음날 새벽에 또 할아버지 앞을 지나가며 인사를 하니
" 잠깐만....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가요." 하신다.
동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나는 한번도 무인 일때는 아이스크림을 사본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나를 아이스크림집에 데려 가셔서는 하나 골라라 하시더니
능숙하게 카드로 계산을 혼자 하신다.
부라보콘을 하나 골라서 할아버지와 이야기 나누면서 먹었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직을 하셨다고 하신다.
' 아..... 우리 할아버지도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 하셨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그 밀려드는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셨다.
' 아..... 우리 할아버지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그냥 삶의 끈을 놓아버리셨는데.....'
그래도 이 할아버지는 저녁에 일찍 잠이 들어 버리고
새벽에 일어나 노인복지회관 앞 의자에 앉아 복지관이 문을 열 때까지 않아서 기다리시고
또 하루를 복지관에서 탁구도 치고 바둑도 두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시고 집에 가신다고 하셨다.
우리 할아버지보다는 훨씬 잘 극복을 하고 계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 돌아가시고는 아예 모든 바깥활동을 끊어버리셨었다.
같은 아파트 한 친구분과 한번 나들이 다녀 오시더니 다시는 나가지 않으시고
얼마가지 않아서 시름시름 앓아 누우셨다.
고독감.....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사신 부부중 한분이 먼저 돌아가시고 남으면
밀려드는 고독감은
감히 나로썬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나보고 혼자면 외롭지 않냐고 하신다.
" 예.... 외로울때도 있지만.... 혼자라서 편할때가 좋을때가 많고.....
누구를 만나서 둘이 있어도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듯 하고.... 오히려 더 외롭기도 했어요...."
라고 말씀드리니....
힘들어도 인생은 얼키고 설켜서 사는 나무들 처럼....
사람들 속에서 의지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한 송해 선생님 말씀이
맞는것 같다고 이야기 하셨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나는 정말 혼자 생활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귀찮아서 그런것인가?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또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혼자 있을때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리고......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로.......
할아버지의 깊은 고독감은...
그만큼 깊은 행복의 다른 면인거 같다.
내가 상상은 할수 없지만....
그 고독감이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
세상은 ....
할아버지 말씀 처럼....
모르겠다.
새벽부터 낮선 사람으로 부터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을 줄이야....
새벽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도없다.
오늘 새벽에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봤고...
새벽에 어떤 할아버지가 사주셔서 먹는 부라보콘 아이스크림은 정말 달고 맛있었다.
운동하러 가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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