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언니집에서 보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맛있는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는 커피를 한잔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무심히 피아노쪽을 보니...
피아노 위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언니 결혼식 사진이다.....
28년전 1991년 10월 어느날의.....
내 좋은 친구가 찍어준 결혼 사진이고.... 정말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사진이다.
대학교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
신입생 후배들이 들어왔고.... 우리 동아리에 나와 이름이 똑같은 남학생이 들어왔다.
하얀 얼굴에 예쁘장한 얼굴이었고... 아주 똑똑해서 의예과를 다녔었다.
의예과 축제가 열릴때
함께 가줄수 있는 지 부탁을 했고.... 흔쾌히 응해서 함께 갔다.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다만.... 1학년 후배랑 갔더니 동급생인 2학년들이 나에게 하대를 하여
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간간히 학교에서 마주치고는 2년후엔 멀리 다른 곳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가서 볼수가 없었다.
어느 날... 언니의 결혼식이 다가왔고....
사진이 취미였던 이 친구가 생각이 나서 언니의 결혼식 사진을 부탁했다.
흔쾌히 응해 주었고....
결혼식 날 두대의 카메라를 매고 들고 결혼식 동안 사진을 찍어 줬다.
몇일 뒤 사진을 받았는데....
한장 한장이 작품이었고....
아버지가 운영 하시는 병원 엑스레이 필름 현상하는 곳에서 직접 현상 인화를 했던 것이었다.
그중 한장은 흑백으로 뽑아서 필름에 색을 입혀서 완전히 작품을 만들어 왔다.
완전 감동이었다.
그 작품이 바로 언니 피아노위 액자안에서 아직까지 28년간 변함없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그리고는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어 서로 잊혀져 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친구로 부터 오랫만에 연락이 왔다.
서울 홍대 앞에서 몇년 만에 만나서 저녁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는 소식이 없었다가....
내가 부산으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또 다시 만나게 되었고...넘 반가웠다.
곧 열리는 의학 대학 졸업 파티에 함께 가자고 부탁 하여 같이 갔었다.
바다가 시원한 전망의 한 송도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나는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뉴욕에서 너무나 추운 겨울.... 몸과 마음이 함께 얼어 있던 어느 날 엽서가 한장 왔다.
따뜻한 마이애미 학회 참석했었던 친구가 보내준 엽서였다.
넘 마음이 따뜻해졌고... 외로움에 떨고 있을때 큰 위안이 되었었다.
한국으로 잠시 다니러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모든 장례가 끝난 어느 날.... 그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넘 반가웠으나...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너무 많이 울어 눈두덩이도 부었었지만...
눈알이 두들겨 맞아 멍이 든것 처럼 욱씬거리고 아팠었다.
친구에게 " 눈이 멍이 든듯 너무 아팠는데... 오늘 너 만나니 좀 괜찮아진듯 하다" 고 하자.
" 원래 병이 명의를 만나면 도망을 간다"면서 웃었다.
그때 친구는 결혼을 하고 막 예쁜 아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축하를 해주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서로 그냥 잊혀진 채로 살아가던 어느 날,
엄마가 눈이 아파서 안과를 찾게 되었고... 함께 가 드렸다.
그 안과 선생님이 지난 번 근무하던 곳이 바로 친구 아버지 병원이었다.
선생님은 친구의 근황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친구의 근황과 연락처를 알게 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제 교수님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대학생같은 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3명의 아이들과 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공부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 있다고 했고...
학회 때문에 1년에 정해진 수많은 해외여행과 가족여행까지...
취미였던 사진을 찍어가면서 짬짬이 여행 글과 사진을 남기며
블로그까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가족여행은 동영상까지 찍어서 티비 프로를 훨씬 능가하는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하나씩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대학시절 의대 다니던 선배랑 몇번 만난 적이 있었다.
늘 만나는 장소는 도서관이었고.... 늘 진지했고....늘 시간이 부족했고.....
여행 좋아하고 자유를 좋아하던 나랑은 맞지않는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의대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었는데...
지금 이렇게 세월이 흐르니 돈 걱정 없이 늘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짬짬이 여행과 취미인
사진으로 세계 풍광을 느끼고 담고....
아.........내가 꿈꾸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옛부터 어른들 말씀을 들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 열심히 더 해볼껄.......
어린시절에는 의대생에 대한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렇게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던 생활의 열매를 보는 듯 했다.
선택과 집중.
친구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엄청난 열매들이 열리고 많은 결실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릴때는 그런 가치를 알지 못했을까?
옆에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있었는데.... 왜 못 알아봤을까?
저마다 마음속 씨앗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친구는 친구의 씨앗.
나는 나의 씨앗.
씨앗이 달랐고... 세월이 흘러 우리는 서로 다른 꽃을 피우게 되는 것 같다.
친구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꽃을 보니 흐뭇하고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도 부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크던 작던 세월이 흘러 피워 온 나만의 꽃이 있고,
나는 나의 꽃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9월.... 지금은 영국 런던 학회에 참석 중이다.
10월에는..... 우리 언니가 결혼했던...10월로 부터 정확히 28년이 지난 10월에는
좋은 친구와 좋은 와인을 함께 기울이길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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