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어릴적....^^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대부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의 기억이 대부분이다.
외조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서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 오늘은 울 아버지쪽 친가쪽 기억을 떠올려봤다.
친할아버지 기억은 전혀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당연히 없다.
하지만 아버지쪽은
이화(梨花)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다정가를 쓰신 고려시대 이조년 할아버지가 우리 시조 할아버지이시고
이조년 할아버지의 32대 손이다.
나도 우리 시조 할아버지의 다정(多情)한 감수성을 물려받은거 같다.
이조년 할아버지 형제는 성함이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그리고 조년(兆年) 이신데
봄에 열리는 춘향제에 참석해보니 우리 조년할아버지 자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그리고 아주 유명한 황금 두덩이와 두형제 이야기가 우리 할아버지 형제 이야기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공민왕 때 형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황금을 강물에 던진 형제 이야기(兄弟投金)가 실려 있는데,
성주 이씨의 가승(家乘)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이억년과 이조년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 형제분들은 우애가 좋으시고... 제사를 엄청 많이 지내시고....
아직도 집안행사가 어마어마 많다.
큰어머니와 큰집 큰올케언니가 아주아주 일을 많이 하셔서 어릴때는 아무 생각없었는데...
커서 생각하니 보통일이 아이었고...
단 한번도 찡그린 얼굴 보여주신적 없는, 늘 웃는 얼굴이신 두분이 진정한 보살이라 생각이 든다.
이것은 아버지의 배경이고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린시절 나는 둘째딸이었고....
여동생이 태어나자 모두들 실망을 했었다.
아버지는 아들 다섯 그리고 딸둘 총 일곱형제 중 세째 아들이다.
아버지를 제외한 여섯 형제들에게는 아들이 다 있었고.... 특히 제사나 집안을 이어가는 유교 사상이
엄청 강한 아버지 집안에서는 모두 아버지 걱정을 하셨다.
큰아버지는 운수업사업을 하셔서 아주 부자셨다.
어릴때 큰집 가자고 하면 집이 커서 큰집인줄 알았다.
부산 연산동 중에서도 아주 아주 큰집이었고..... 지금은 그자리에 모텔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 친할머니는 하얀얼굴에 항상 비단이나 우단 예쁜 한복을 곱게 입고 계셨고
무서웠다.
우리 세자매만 보면 "가시나 서이 머할끼고?"
하면서 우리랑 울 엄마를 혼내신다.
특히 나만 보면 눈을 치켜뜨시면서 " 이 고추밭에 터도 못 팔고....." 를
볼때마다 외치셔서
여동생이 여자아이인게 나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어디 가서 숨곤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놀리면 다른 오빠들도 같이 놀리곤했다.
자주 큰집에 가지는 않았지만... 갈때 마다 할머니로 부터 그런소리를 들으니
신경질이 났다.
"내가 뭘?" 아무도 설명도 해주지도 않고 놀려대기만 해서 화가 났다.
어느 날 큰집을 갔다.
큰집에는 늘 강아지나 큰개가 있었다.
그날도 다들 나를 놀렸다.
나는 화가나서 강아지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돌을 하나 집어 강아지쪽으로 던졌다.
내 속상한 마음을 담아서 휙 던졌다.
그랬더니 쨍 소리가 난다.
큰집 마루에 큰 유리 아래쪽에 내가 던진 돌이 맞아 깨져 여러갈래 금이 갔다.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속이 좀 시원해지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만감이 교차했다.
다들 나와서 유리깨진것을 보고 나를 보시고는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셨다.
그리고 큰일이라 그랬는지 오히려 나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다들 그냥 깨진 유리 보면서
어쩌나 걱정을 하셨다.
특히 그 유리는 당시 수입품이었는데 더 구하기 힘든거라고 했다.
육각형 모양들이 불투명하게 올록볼록 모여있던 좀 특이한 유리였다.
그리고 다음번 큰집 방문할때 그 유리를 보았더니....
노란 테이프로 이리저리 금이 간 부분을 붙여 놓았다.
마음이 좀 무거웠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우리집에도 아들이 태어났다.
드디어 나도 한시름 놓았다.
더이상 내가 혼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내 여동생이 드디어 해냈다.
고추밭에 터를 판것이다.
내가 못한 일을 내 여동생이 해낸것이다.
ㅎㅎㅎㅎㅎㅎ
그게 뭔지 지금도 모른다.
막내를 낳기전에는 우리엄마가 아들만 셋을 둔 숙모님을 엄청 부러워했었다.
"엄마 쉬"를 외치는 어린 남자애 조카에게 물통 주며 쉬를 받는 모습이
엄마는 그렇게 부러웠었다고 한다.
우리는 "엄마 쉬" 하면 데리고 화장실로 가셔야 했다고...
세월이 흘러 흘러....
지금은 딸이 없는 울 숙모님이 울 엄마를 엄청 부러워 하신다.
내가 중학교2학년때 돌아가신 울 친할머니는
세상이 이렇게 바뀔지 전혀 모르셨을꺼같다.
우리 엄마는 나 보러 뉴욕 오셔서 구경을 잘 하셨다.
올해는 내 여동생 보러 미국 서부랑 캐나다 구경하고 계신다.
딸덕에 비행기 탄다는 말이 있다더니
정말 울 엄마는 그러고 계신다.
당장의 좋은일이 나중에 안 좋은일이 될 수도 있고....
지금 힘들고 안좋은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게 행운이었던것도 있고....
세상일이 그런거 같다.
할머니....
지금은 아들 딸 구분없이 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답니다.
아니 오히려 엄마에게는 딸이 넘 소중한 세상이랍니다. ^^
한복을 곱게 다리고 계시는 우리 친할머니....
그시절 여자들은 부엌에서....
그래도 뭐가 즐거우신지...^^
'적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아버지 생신을 맞이 하여 교회를 찾아본다. (0) | 2019.09.22 |
---|---|
아버지.... (0) | 2019.09.22 |
복숭아와 할머니 (0) | 2019.09.20 |
내친구 은선이... (0) | 2019.09.20 |
내 친구 미옥이... (0) | 2019.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