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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PIANO

달빛7 2019. 10. 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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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이란 것을 할 때부터 우리집엔 피아노가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사진을 봐도 우리집엔 피아노가 있다.

그래서 집집 마다 피아노가 있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 피아노는 우리 엄마 보물 1호였다.

엄마의 막내삼촌이 일본에서 크게 성공을 하시어 늘 친척들에게 베푸셨는데...

그 삼촌이 엄마의 결혼 선물로 사준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삼촌, 좋아하는 피아노.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기위한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엄마는 늘 손풍금 또는 풍금으로만

피아노를 배우고 치다가 부자 친구집에서 피아노를 처음 보고 너무나 갖고 싶으셨고...

부자 삼촌이 그 꿈을 이뤄주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싶다.


엄마는 자신이 못이룬 피아니스트 꿈을 우리가 이뤄 주길 바라 셨는지

국민학교를 들어가자마자 언니랑 나 둘을 피아노 학원으로 보내셨다.


언니는 피아노를 좋아하고 잘쳤다.

나는 피아노가 너무나 지루하고 싫었다.


외할아버지 셩격을 고대로 물려받아 성격이 급했고... 밖에서 뛰어 놀기를 좋아했고

차분히 피아노 치기엔 에너지가 넘쳤었다.


반면 차분하고 조용한 언니는 피아노를 사랑해서 음대까지 생각을 할 정도로 열심히 쳤다.


피아노 때문에 우리 둘다 늘 혼났다.

언니는 피아노만 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나는 피아노 연습하는 꼴을 못본다고....  하시면서...

저놈의 피아노.


전두환 대통령시절엔 과외가 금지 되어 증명사진을 찍어서 과외 허가증이란걸 만들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야 한 시절이 있다.

그 증명서 때문에 국민학교 4학년때 찍은 증명사진이 많고 많은 우리집 앨범 어디엔가

누워 있을것이다.


어쨌든 피아노는 수년을 배워도 도무지 늘지가 않았고...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토요일 음악이론 시간이었다.

토요일은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다같이 한자리에 모아놓고 음계, 음표, 음정, 박자등

음악 이론을 가르치고 이론시간이 끝나면 간식을 주신다.


음악이론도 재미있었지만... 친구들과 간식 먹는 재미가 가장 컸다.


성격이 급한 나는 한박자가 너무나 길었고.... 쉼표는 너무 오래 쉬는 듯 해서

도무지 쉬어지지가 않았다.

피아노 레슨시간엔 늘 조급증이 나고 화장실 생각이 나고 피아노 레슨이 끝나면

뭐하고 놀까 궁리하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도무지 피아노 실력이 늘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돈이 아깝다.

수년간 간신히 바이엘 상 하권을 떼고... 체르니를 조금 시작하다가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피아노와 시원하게 작별을 했다.


피아노는 완전히 언니것이 되었고.... 언니는 끊임없이 쇼팽의 즉흥환상곡등 일취월장하는 실력으로

집안에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게 했다.


그 이후 피아노와의 인연이 없었다.

없어진줄 알았다........



뉴욕 유학을 갔다.

운이 좋아서 멋진 언니랑 룸메이트를 하게 되었다.

UN을 다니는 미국 교포언니인데 5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늘 이집트, 이탈리아, 프랑스 등등

외국에 출장을 다녔었다.

룸메지만 친언니처럼 맛있는것도 많이 사주고 아주 비싼 아파트의 방값도 나는 가난한 유학생이라

3분의 1만 내고 있었다. 20년전 뉴욕 맨하탄의  아파트 한달 렌트비가 2100불이었고...그외

생활비등 정말 살인적인 물가에 우리나라 IMF까지 겹쳐 참 힘들었다.

복이 많은 나는 좋은 룸메언니 만나서 최고급 아파트에서 넘 잘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 언니 아파트 한 가운데에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처음엔 그냥 피아노가 있구나.... 했는데...

어느 휴일날 그 언니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우와~~~~~

곡이름은 모르겠다.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이 강해졌다 끊어질듯 약해졌다 반복하면서 가슴이 찡했다.

곡이 끝나고 박수가 절로 나왔다.


얼마나 배웠냐고 물어보니 국민학교 4학년때 미국으로 이민 오고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배웠다고 했다.

여동생들은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웠다고 했다.

나는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피아노를 수년간이나 배웠는데.....

언니에게 피아노 치는 것이 즐거웠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싫어서 도망을 다니곤 하다가 엄마에게 붙들려 혼이나곤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싫어도 계속 하다가 보니 어느순간 재미가 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넘 즐겁게 배우고

지금은 그때 억지로라도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했다.


재미.... 즐거움.

나는 피아노를 치는 재미를 거의 느껴본적이 없었다.

피아노 = 지루 가 나에겐 공식이 되어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룸메 언니는 유럽과 아프리카로 긴 출장을 떠났다.

혼자 1주일을 지내야 해서 좀 심심했다.


문득....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어 피아노 책을 보니 모짜르트소나타 악보책이 있다.

책을 펼치고 수십년 만에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음 한음 한손씩 악보를 보면서 피아노를 쳐봤다.

아주 아주 천천히.....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며 한걸음 한걸음 떼듯이....


그랬더니 피아노에서 예쁘고 멋진 화음이 천천히 나오기 시작한다.

아..... 이곡은 언니가 많이 연습하던 그곡이고.....

국민학교 6학년때 피아노 대회 지정곡이어서 몇번 연습을 시도 했었던 그곡이다.

모짜르트 소나타 NO 16  in C.

아주 아주 익숙한 그 곡이다.


하루 이틀 삼일.... 룸메언니가 출장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나 혼자 이곡을 다 익혔다.

그리고 앞 부분은 외워서 쳐졌다.

아...... 피아노와 화해를 하였다.


가만히 있던 죄없던 피아노를 참 많이 미워했었는데....

이렇게나 좋은 친구가 될수 있었다니....


어릴적 싸웠던 친구와 화해한 심정이 되어 넘 반갑고 행복했고... 덤으로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를 조금 맛보게 되었다.


룸메 언니가 돌아오고... 그 이후는 별로 심심한적이 없어서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혼자 익힌 그 곡은 손가락이 외워서 피아노 앞에 앉으면 자동으로

연주를 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하니....  억지로라도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울 엄마가 참 감사하다.



내 나이를 훌쩍 넘긴 울 엄마의 피아노...

나를 많이 울렸고... 힘들게 했던 피아노도...

이젠 조율한지 좀 되어 그런지... 소리도 좀 늙어있고...

기름때도 많이 빠져있지만..... 좋은 친구로 옆에 가만히 서서

함께  침묵을 지켜고 있다....

















내 나이를 뛰어 넘는 한때 우리집 보물 1호였던 울 엄마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