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생에 병원에서 안좋은 기억이 있었던것이 틀림없다.
어린시절 다섯 여섯 살쯤 이었다.
추석이 지난 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이맘때였다.
머리에 열이 슬슬 나기시작하고
기운이 없어서 축쳐저있었는데...
할머니가 추석이라고 사주신 예쁜 멜빵 바지를 입혀주신다.
무지개 색깔에 바지 밑단이 여러겹으로
티비 가수들이 입고 나오던 그런 아주 예쁜 바지였다.
나들이 가는줄 알고 옷입고 신나서 할머니 손잡고
빨간버스를 타고 원전에서 곤양으로 갔다.
그런데.... 버스 내리자 마자 정류장에 붙어 있는 1층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다.
으악!
그 어린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치 사지를 끌려 들어가는 소가 된 심정이 되어 발버둥을 쳤다.
싫어요.
엉엉.
엄청 울면서 발버둥을 있는 힘껏 쳤다.
할머니에게 질질 끌려서 병원을 들어갔다가 탈출해서 도망을 쳤다.
그랬더니 간호사와 어떤 아저씨가 날 붙잡아서 번쩍 들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엉엉엉엉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엄청나게 울었고......
너무나 무서운 주사를 맞고야 말았다.
지금도 그때가 너무나 생생하다.
어린 아이가 병원이 싫어도 너무너무 싫었던 것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감기 주사 하나 맞고
원전으로 오는 빨간버스를 타고 오고 있는데...
날 안고 앉아계신 울 할머니가 옆에 앉아있는 다른 할머니에게
오늘 있었던 병원 소동을 이야기 해주신다.
아주 생생하게....
그러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보고는
"저 바라. "
하신다.
손가락을 가르킨 쪽을 보니 나즈막한 산이 있고.... 그 산에 무덤이 많이 있다.
" 주사 안맞으면 저리 된다."
겁을 주신다.
하지만... 어린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와닿지도 않고
그게 뭐 어때서 하는 맘이 들고...
그거보다도 병원 그리고 주사가 더더더 무서웠다.
그리고 그날 밤.
열이 내리기는 커녕 본격적으로 더 펄펄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그만 빨간점들이 생겨난다.
알고 봤더니
감기가 아니라 홍역이었다.
홍역에 감기주사.
그것도 그렇게나 싫어하는 주사를 맞아서 너무나 억울했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했던 그 예쁜 추석빔인 바지는
볼때마다 병원이 떠올라서 보기 싫어졌다.
이 돌팔이 곤양병원 의사아저씨 미워.
몇해 전쯤 곤양을 찾아보니 정류장도 그대로 있고 치과가 있다.
아프고 생생한 기억이었지만...그래도 어린시절 추억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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