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6월 한달 무상사에서의 결제를 다녀온 후로 계속 무상사가 그리웠다.
1달전에 추석 참선수련회 안내를 멜로 받은후 바로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9월25일 토요일이 왔다.
전날부터 설레임이 들었다. 아침 8시 KTX를 예약해놔서 일찍 집을 나섰다.
대전역에 도착하니 예전에 두계가던 기차가 시간이 바뀌어 있었다.
하는수 없이 버스를 탔다. 그리고 두계에서 택시를 갈아타서 무상사를 갔다.
택시 기사님 말씀 "무상사에 무슨 일이있나요? 오늘 여러분들이 무상사를 가시네." 하신다.
"예 수련회가 있어요'"
창밖에 보이는 무상사가는길은 3개월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벼들도 노랗게 황금물이 들어서
넘실거리고 아직은 푸르지만 한여름의 푸름과 다른 산모습이었다.
도착하고 종무소가니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명안스님,숙현보살님,등등등
인사를 드리고 간단히 서류 쓰고 배정된방에 갔다. 5명이 한방을 썼다.
오후1시 30분 오리엔테이션이다. 이번 수련회 참가자는 40명이다. 스님들과 함께 49명이
4일간 참선수련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원주스님이신 관미스님의 간단한 주의사항에 이어 부입승스님의 절하는법 과
사찰예절 설명 그리고 입승스님의 발우공양하는법등 그리고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쉬는 시간에 무상사를 둘러보았다. 스님들 몇분이 새로오셨다. 그리고 명행스님은
미국 가셨고 어떤 스님은 화계사 가시고 등등 많이 바뀌셨다.
인생무상이라더니 3개월이 지났는데 무상사에도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저녁시간을 마치고 6시 예불시간이다. 간만에 들어보는 그리고 함께 하는 예불
종소리와 함께하는 예불소리가 온몸을 감싼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면 해가 뉘엇뉘엇지고
어둠이 깔린다.
아름다운 계룡산 특히 무상사에서 보는 풍경은 이루 말할수 없이 아름답다.
따뜻한 차 한잔하면서 몸에 묻은 찬 기운을 떨쳐본다.
저녁7시 참선시간이다.
오늘은 첫날이라 주지이신 무심스님께서 참선을 직접 지도해 주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을까?
모두들 고향을 찾아가는 추석에 우리는 이렇게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무상사에 왔다.
1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고속도로 위 차 안에 앉아있는 대신 우리는 여기 선방에 앉아서
참선을 할 것이다.
바른자세, 호흡, 그리고 정신의 조화. 20년 넘도록 참선을 해오셨는데 참선을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셨다.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을수 있을때 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하셨다. 감사한 말씀 새겨들었다.
그리고 질문과 답변들이 오가고 8시부터 9시까지 참선을 하였다.
모두들 열의가 대단했다.
작은 움직임도 없었고 숨소리도 없다. 침을 삼키는데 왜이리 소리가 큰지.
편안했다.
모든것이 가라앉는다. 숨도 가라앉고 마음도 가라앉고 호흡도 가라앉는다.
시간은 총알같이 지났다.
다음날 새벽3시
도량석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3시25분 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사홍서원을 한뒤 108배를 했다.
80배가 넘어가자 땀방울이 방석위에 한두방울 떨어진다.
108배를 끝내고 예불 장소인 대웅전쪽으로 올라갔다. 대웅전 옆에 산아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하안거 결제 중에도 이시간 이자리에서 간단히 기체조를 했었다.
같은자리에서 기체조를 했다. 상쾌하고 차가운 새벽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코를 통해
폐 깊숙히 들어온다.
새벽4시 예불시간 예불을 하면서 내 몸의 울림을 느껴보았다.
저음은 단전에서 소리가 나오고 중음은 가슴에서 울리고 고음은 목 그리고 머리에서
소리가 나오는것 같다.
내 목소리와 옆 다른사람들의 목소리가 합해져서 또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첨엔 여러 톤의 목소리들이 한목소리로 조율되어 새로이 만들어진다.
호흡이 점점 길어진다. 울림이 깊어진다.
새벽예불에는 조조종송, 오분향례,반야심경 한글, 영문, 그리고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예불한다.
예불을 마치고 다실에서 차를 한잔하고 선방에 들어간다.
새벽5시부터 6시까지 1시간 참선을 한다.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아 졸립기도 하지만 아침의
상쾌한 기운속에서의 참선은 매일 새롭게 시작된다.
오전6시10분 아침공양. 아침은 죽공양이다.
발우공양이 익숙해서 수월하다.
사람이 가장 욕망을 강하게 드러낼때가 먹을때라 한다.
발우공양의 한가지 한가지 예법들을 지키면서 나의 욕망을 관찰해본다.
욕망이 강하게 느껴지면 한박자 늦추어본다. 그러면 나의 욕망이 보인다.
발우공양은 참으로 아름다운 방법이다. 음식물 하나,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설겆이 할물도 엄청 절약되는 그리고 우리 몸에도 좋은 채식으로 정성껏 공양을 한다.
그러다 보면 김치 한조각도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 들고, 무심코 먹고 지내던 내가
수많은 이들로 부터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이다.
오전6시45분부터 1시간은 운력시간이다.
방 청소를 하였다. 지난번 결제때 나의 가장 큰 스승중 하나가 운력이었다.
집에서도 청소 잘 하지 않던 내가 이곳에서 청소를 하면서 나와의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구분없이 그냥 바닥닦을때는 바닥 닦기만 하였더니
어느샌가 청소가 다 되어있는 그런 수행의 하나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대할때 내 마음 그리고 일을 할때 내 마음 등등
하나씩 들여다 본다. 그러면 나의 평소 습관이나 마음가짐을 볼수 있다.
특히 게을러져 있을때는 운력은 최상의 스승이 되는것 같다.
이번 운력시간에도 느꼈다.
전시회다 뭐다 핑계거리 많들어 대더니 사실은 바쁜척하면서 더 게으름을 피워오던것이
보였다. 닦자 닦자 오직 닦을뿐.
운력이 끝나면 약 1시간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지난번 결제때는 휴식시간에 산책을 한다든지 책을 읽으면서 낮잠을 자지 않았다.
이번엔 낮잠을 잤다.
그런데 오히려 개운하여서 참선때 머리가 더 맑은것 같았다.
오전8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참선시간이다.
한달간의 참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3개월간 참선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몸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오래 앉아 있었던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지 익숙하였다.
반 가부좌 다리도 많이 아프지 않았다.40분 참선후 죽비가 울리는데 그동안 전혀 움직임도
없었다. 몸은 그러한데 마음은 그러하질 않는다....
오전11시 40분
점심 발우공양하고나면 2시까지 쉬는 시간이 오래 주어진다.
낮잠을 잤다.
오후2시부터 3시까지 참선을 하고 3시부터 무심스님 법문이 있었다.
오늘은 말레이지아에서 오신 지첸스님 법문이 있었다.
인도 한 이야기 인데 어떤 남자가 아주큰 하얀코끼리가 쫓아와서 피하다가 그만 우물에
빠졌다. 그리고 덩쿨을 하나 잡았는데 그 덩쿨 위에선 흰쥐와 검은쥐가 번갈아가면 덩쿨을
갉아먹고 있었고 우물 바닥에는 3마리의 독사가 혀를 낼름거리며 그남자를 위협하고 있었다.
근데 그 와중에 우물틈에서 핀꽃에서 꿀물이 떨어지는데 그남자는 꿀물을 핧아 먹느라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을 비유한 것이었다.
코끼리는 살아가는 어려움이고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 그리고 3마리뱀은 탐 진 치 즉
욕망, 집착, 그리고 어리석음이고 꿀물은 좋은 직장 혹은 좋은 직위 또는 좋은 가족등
세상사람들이 흔히들 가치있게 생각하는 그런것들이다.
그리고 '인간의 길'이라는 시도 한편 읊어주셨다.
인간의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게
인생이다.
태어났을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죽을때, 어디로 가는가?
삶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본래 구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 우리 인생의 오고감
모두 이와 같다.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맑은게 하나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순수하고 맑은게 있다.
그렇다면 맑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일까?
그리고 무심스님도 좋은 법문을 해 주셨다.
1980년도에 무심스님께서는 한국 화계사에서 참선 공부를 하시면서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고 계셨다. 그런데 그때 한국 대학생들이 데모를 심하게 할때였다.
미국인이신 무심스님 보시기에 항상 연세대 정문 앞에 정경들이 무장을 하고
허구헌날 채류탄 가스를 마시면서 한국어 공부하는것이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숭산스님의 한제자가 숭산스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한국의 각 대학교들 그리고 심지어 도심지까지 무장경찰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채류탄 가스를
쏘아대는현실이 너무 참혹 합니다."
그러자 숭산스님 말씀이 " 그 무장경찰들이 아름답기도 하지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누군가가 보는 참혹한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비칠수 있다.
이말씀은 가슴에 많이 와닿았다. 군대의 높은 장군 혹은 그 경찰들의 어머니들이 보셨다면
자랑스런 아들, 자랑스런 부하의 모습이겠지.
이렇듯 모든것은 상대적이고 우리가 생각을 해 내는 한 이 세상은 모두를 만족시킬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오래전 숭산스님과 함께 미국에 계실때 추수 감사절을 맞아
참선 수련회를 가지셨다 하셨다. 그때 숭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추수 감사절은 모두에게
행복한 날입니다. 단 칠면조만 빼고요"
상대적이라는 말 즉, 절대적이란 말의 반대말이다.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이 세상에는 모든것이 상대적이다. 크다 작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이런 상대적 세계에서는 둘이 아닌것이 없다.
그래서 행복은 불행의 다른면이며 미움은 사랑의 다른표현이다.
우리가 추구할 절대적인 세상 (절대적이란 말을 함과 동시에 절대적이 되지 못하지만)은
생각으로 유추할수가 없는 생각 이전의 세상이다.
탕!
주장자를 한번 힘차게 내리치신다.
그래서 옛 큰 스님들은 진리를 표현하실때
가급적 말씀을 아끼셨고 그 실체를 말 아닌 말로써 표현하시려고 애쓰시다 보니
'진리란 마른 똥막대기다" 내지 손가락을 하나 보인다든지, 등등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시는 표현만 하신것이라 하셨다.
못알아듣는 범인들도 답답했겠지만
진리를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 큰 스님들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마임으로 보여주는 수수께끼도 아니고...,
법문이 끝나고 저녁공양시간
그리고 저녁예불
저녁예불은 조조종송 대신 저녁종송을 하고 천수경을 하나 더 한다.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많아진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녁7시부터 9시까지 참선했다. 다리가 아파온다. 무릎도 아프기 시작한다.
삼일째 새벽3시 도량석이 들린다.
일어나는것이 어렵지 않다. 무심스님께 인사드리고 108배했다.
허벅지가 근육이 잡히는지 아리 하다.
새벽4시 예불위해 대웅전으로 올라가는데 하늘에 별들이 보이는데 밤안개가 자욱하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데 동이 터 오려는데 안개는 짙어만 간다. 환상적이다.
새벽5시 오전 참선을 하고 6시10분 아침공양을 하고 밖에 나오니 안개가 산들마다 허리를
휘감아서 쓰다듬듯이 지나간다. 그러면 또 다른 안개가 산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푸른 산꼭대기가 안개위에 우뚝 서 있고 그위에 하늘은 콕찌르면 물이 쪼르르 쏟아질듯
파랗다. 간간히 보이는 구름은 빗자루로 쓸어놓은득 질서 정연하게 지나간다.
너무나 아름답다. 무릉도원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낮잠도 포기하고 경치에 취해본다.
여기저기 사진기를 꺼내와서 찍어댄다. 아쉽다. 사진기가 없다.
설사 있다해도 이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해 안달했을껄.
오늘은 무심스님과 선문답이 있다. 한명씩 혹은 세명씩 선문답하러 내려간다.
참선을 하는데 가슴 저 밑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모든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전시회든 만나는 인연이든 내가 하는 일들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왔는데 도움이 너무 많다보니 무덤덤하게 감사함을
잊고 살아온듯 했다. 그런데 참선을 하는 동안 하나하나 그 쌓였던 감사함이
왈칵 올라오면서 눈물이 나게 감사했다. 마치 참회의 눈물처럼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오전 참선이 끝나고 점심공양 그리고 쉬는 시간
오늘은 계룡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을 잘수가 없었다.
산을 올라 보았다. 가파른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는 길 곳곳에 차가 올라오지 못하게 돌을
박을 모습들이 보였다. 땀이 났다. 뒤에 누가 따라올라오고 있었다.
다른이는 저 위에 먼저 올라가고 있다. 계룡산의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이 나혼자가 아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꼭대기까지는 못올라가고 거북바위까지 올라갔다와서 찬물에 샤워를 했다.
아 시원해.
그리고 오후2시부터 참선을 했다.
아침에 그렇게 안개가 끼더니 낮에는 햇살이 눈부셨다. 전형적인 맑은 가을하늘과 전경이었다.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하고 그러다가 4시가 좀 넘자 나의 선문답 시간이 왔다.
다실에서 참선을 하며 기다렸다.
종소리가 울리고 내차례다.
무심스님께 절을 올리고 앉았다.
나는 너무나 반가왔다. 다른스님들께는 반가움을 다 표현했었는데
무심스님은 주지 스님이라 뵙기도 힘들었고 또 말씀 안드려도 내 마음을 다 아시는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공안을 주셨다.
"번뇌의 숲을 지나면 자성을 만날수 있습니다.
자성을 만났다면 이미 생사가 없습니다.
그러다면 다음생에 당신은 무엇으로 태어나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큰소리로 대답하자.
스님께서 웃으신다.
"예 참선을 더 하세요." 하셨다.
"예"
무심스님을 뵈면 많은 힘을 얻는다.
스님을 뵈면 항상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을 얻어간다.
내가 구하고 원하는것이
틀린것이 아니란 확신을 하고 간다.
이 세상 사람들 80%가 내가 찾고자 하는것을 무시하고 사는듯하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살아가므로 이 80%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무시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자유롭지만 간혹 외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스님을 뵈면 외롭지가 않다. 도반들을 보면 외롭지가 않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스승과 도반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낀다.
감사드립니다.
저녁 공양후 저녁 예불을 드렸다. 이번 수련회의 마지막 예불이다.
그리고 대웅전을 나서는데 "아!"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둥그렇고 큼직한 노란 달에 정말 떡방아 찧는 토끼가 선명히 있는 그런 예쁜달이
그림에서나 봄직한 옆으로 몇줄 그려놓은 듯한 구름줄기에 조금씩 가려서 빛을 내고 있었다.
모두들 대웅전 근처에서 발이 땅에 붙은듯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뒷산과 키큰 소나무들 그리고 구름에 걸친 보름달.
잠시 있으니 구름이 걷히고 큰 보름달이 수줍게 둥근 모습을 다 드러내었다.
아! 아! 아름답다를 연발하면서 사람들은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녁 참선시간에 선방에도 밝은 달빛이 가득했다.
달빛이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들 마음도 예쁘게 비추고 있었다.
마지막 저녁참선을 마치고 사홍서원을 하고 달구경을 하다가 방으로 왔다.
9시20분에 소등을 하고 취침을 해야하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달빛에 취해서 규칙이고 뭐고 다 잊어 버렸나보다.
마지막날 추석날 새벽 3시
어제 다들 늦게 들어왔지만 잘일어났다.
무심스님께 인사올리고 아침예불드리고 대웅전을 가는데 대웅전 뒷산에 보름달이
아직 걸려있었다. 그리고 아쉬운듯 마지막 빛을 환히내고 있었다.
잊을수 없는 달풍경이었다. 아침예불때는 모두가 아쉬워서인지 더더욱 한목소리가
되어 아름다운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아침 참선시간.
아무래도 마지막은 마지막인가보다.
첫날 처음 참선시간엔 아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더니 마지막날이고 어제본 아름다운
달빛에 정신을 잃었는지 다들 들뜬듯 했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운력을 마치고 각자의 침구커버를 벗겨 세탁기넣고 하나씩 하나씩
정리를 했다.
오전 참선은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했다. 그리고 좌담회를 했다.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소감발표를 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나역시 무상사가 집처럼, 고향처럼 느껴졌고 새로운 많은 가족을 만나서 반갑다고 했다.
그리고 무심스님께서 질문있으면 하라셨다.
"스님, 만약에 스님 다시 태어나신다면 뭘로 태어나고싶으세요?" 하고 질문드렸다.
스님께서 웃으셨다.
그리고 재미있는 대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깊은 의미의 대답도 해 주셨다.
좌선회를 마치고 무심스님과 다 함께 점심식사를 부페식으로 자유롭게 하고 짐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1층에 내려오니 무심스님께서는 여러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계셨다.
나도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시다가.
"사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스님이 되고싶어요."하고 말씀 하셨다.
스님이 된다는것은 어떤일일까?
지난번 같이 결제를 했던 나디아는 묘미 행자님이 되어서 머리를 깍았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내가 스님이 되어 한평생 살아간다는것은 상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묘미행자님을 보면서 행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묘미행자님과 잠깐 이야기했는데 몸은 굉장히 힘이 든다 했다.
그런데 어떤일이 올때마다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들여 본다했다.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한번 본다했다.
어떨때는 아무렇지도 않고
어떨때는 화가 머리끝까지나고
또 어떨때는 눈물이 마구 쏟아지고...,
묘미행자님은 여전사 같았다.
어떤 일이 와도 다 이겨낼 준비가 되어있는 여전사.
그런데 내 마음이 왜이리 쨘 한걸까?
절대적 평화를 얻기위한 댓가인가?
내가 느끼는 선의 세계란 어떤것인가?
내가 느끼는 오직 모를뿐이란 무엇인가?
내가 느끼는 나란 무엇인가?
탕!
2005년 2월에 무심스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상사로 짐을 몽땅 싸들고 갔다.
이젠 무상사가 내 집이 된것이다.
머리는 깍지 않았지만 종무소에서 일하면서 수행하게 된것이다.
해제철 역시 새벽3시 108배로 시작하여 예불을 드리고 참선을 한뒤에 아침공양을 하고 운력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한다. 그리고 일이 끝나는 오후5시 공양하고 6시 예불 그리고 참선으로 마무리 한다.
운력이 없는날은 향적산을 올랐다.
국사봉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음이 확 트인다.
8시쯤 되면 저 아래 계룡대 군인들의 체조음악이 들려온다.
모든스님들께서 서로 한가족 처럼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정신적으로 모인 가족들이라 더 깊은 애정이 있는건 아닌지.
서오스님과 혜통스님은 항상 바쁘시다.
두 한국 스님들은 모든 한국 예법과 제사 그리고 농사등을 담당하고 계셨다.
사슴집이 김해로 이사를 가서 비구니 스님들은 새로운 암자가 생겼다.
그리고 농장이었던 그 넓은 땅은 다 밭이 되었다.
모든 스님들이 아침마다 농사를 지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다들 기뻐하면서 감자도 심고
고추도 심고 옥수수도 씨뿌리고 고수, 상추, 아스파라거스 등등 많이 심었다.
벚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왔다.
가까이 있는 동학사 벚꽃 구경을 갔다.
서오스님의 법 조카인 승언 스님이 동학사에 계신다.
덕분에 동학사 구경을 하였다. 경허스님이 계시던곳도 보았다.
아름답다.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법고를 치는 승언스님은 천사처럼 아름답고 여전사처럼 강해보였다.
동학사 위의 은선폭포를 보고 내려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옆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곡차도 한잔했다.
3잔을 마시고도 전혀 표시 안나는 묘미 행자님.
두눈동자를 모아 재밌는 표정을 짓던 원성스님.
모두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현공거사님과 일지보살님을 만났다.
항상 똑같이 변함없이 수행하시면서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힘닿는 대로 도와 주시고 사시는 아름다운 두분.
두분과 함께 논산의 안심사와 대둔산 태고사 그리고 공주의 마곡사를 다녀왔다.
"절 많이 해라." 하시던 태고사의 도천큰스님.
따뜻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는 마곡사의 마가스님.
그리고 현공거사님은 성수큰스님을 만나게 해주셨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 다가온다.
모두 등만들기를 했다.
한장한장 연잎을 붙이는데 점점 실력이 붙어서 속도도 빨라지고 예쁜 연등들이 만들어 졌다.
만든 연등들을 법당과 선방에 다는날
명행스님께서 차안의 스피커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여 주셨다.
음악을 들으면서 색색가지 연등들이 춤을 추었다.
부처님 오시는 날이다.
그간 만들어왔던 하얀 코끼리가 퍼레이드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다.
많은 손님들이 오셨고.
다함께 부처님 오시는 날은 축복했다.
아무런 불평이 없다.
모두들 따뜻히 대해주시고, 행자님과 공양주 보살님께서 맛난 공양 지어주시고,
편안한 잠자리와 좋은 시설들, 그리고 좋은사람들과의 만남들.
하지만 이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광월이를 발견했다.
행복한 무상사의 시간은 이것으로 마감해야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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