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공자수

손공자수 처음 배운날..

달빛7 2009. 3. 2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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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할아버지로부터 손공자수를 배우는 날이다.
할아버지의 골무는 빨간 고무장갑 손가락 부분을 짤라 손수 만드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낡아서 구멍이 난 골무 끼시면서 나에게 새로 만드신 빨간 골무를
주신다.

“아네 귀찮네예”
“ 끼라 손 아플낀데”
“댔어예”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할려면 고함을 질러야 된다.

“ 이렇게 등분을 나눈다.”

하나 씩 하나 씩 너무나 찬찬히 가르쳐 주신다. 한편 잘 따라 할까 싶어서인지 걱정스런 눈길도 간간히 보내주신다.

공을 지구라 생각해서 위도와 경도처럼 등분을 나눈다.
오늘은 처음이라 4등분을 배운다.  줄자를 가지고 열심히 표시해가면서 등분을 나누어본다.

“22 나누기 2는 11” 그러고 가운데 빨간 점을 콕 찍으니

“다시 재바라 22 아이다”

“맞는데예?” 할아버지께서 다시 재보신다.

“22.3 아이가”

“마 대충하믄 안됩니꺼?”

“안된다이. 그라모 삐둘어진다 아이가”

공을 만들때 솜을 뭉쳐서 실로 그위를 감는다. 500번 정도 감고 또 솜을 덮어서 500번 정도 감는다. 이때 할아버지의 손은 정말 예술이다.
1000번을 감아도 어느 한군데 치우침 없이 골고루 손길이 가서 둥근 공하나가 완성된다.
그리고 등분을 나눌 때도 대충이 없다. 눈도 잘 안보이시면서 소숫점 두 자리까지
계산을 하신다. 이것이 다 조화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작품을
완성할 수가 없다.
갑자기 햇볕이 생각났다. 편애 하지 않고 어느 곳이나 골고루 비추는 햇볕.
어느 한쪽으로 더 많은 실이 가면 다른 한쪽은 모자라는 것.

“예” 대답하면서 종이 한가운데에 22.3이라고 크게 그렸다.

“이라모 안된다.”

“예?”

“종이 맨위 왼쪽에 조그맣게 쓰거라.”

“예”
대답은 하면서도 속으로 “하이고 참 할아버지도” 해본다.
왜냐면 그 종이도 신문 속에 딸려온 광고지 뒷면을 반 자른 종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개를 문득 들어보니 모든 상자 가구들이 너무나 오래된 것들이다. 한 상자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는데 앞 번호가 두 자리다. 언제 적 상자일까?  
모든 물건에도 수명이 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 손에 들어온 물건들은 정말 행복 할꺼 같았다. 차곡차곡 정리정돈 되어 사랑받으며 오래오래 제 사명을 다하다가
가는 물건들이니까.

할아버지 말씀대로 종이 위 왼편에 조그맣게 다시 썼다.

“할아버지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예?”

그냥 공만 바라보며 등분 나누던 나는 심심했다. 무의식중에 할아버지 귀가 잘안들린다는 생각을 못하고 평소 때처럼 히히닥 거리며 우스게 소리를 하면서 웃었다.
근데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듯 그냥 수만 놓고 계신 것 이었다.
무안했다. 그리고 나도 아무 소리 없이 공만 쳐다보며 수를 놓았다.
등분을 다 나누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들뜬 기분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이 수를 놓으며 마음이 하나가 되어짐을 느꼈다. ‘아 정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구나‘ 하고 느꼈다.
이 편안함 혼자의 세계,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 하면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듯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내가  둘이 함께 라는 것을 느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른다. 총알 같이 지났다고나 할까.
몇 분을 앉아 있었는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작은할머니의 반찬은 참 맛있다.
어제 처음 와서 밥을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반찬맛과 국 맛이 우리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우리 어릴 때부터 해주셨던 그 맛들 그대로였다.
맞다. 우리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는 형제시다. 한어머니 밑에서 자라셔서 같은 입맛을 갖고 계시고 그 전통이 내 입맛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진주는 맛이 강하다. 한마디로 좀 짜다. 서울 가면 싱겁다. 김치도 싱겁다.
이것이 문화인거 같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우리 한국은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세계문화들이 따뜻한 물 찬 물 섞이듯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간단하면서 신기했다. 자수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갔지만 우리 전통자수뿐 아니라 세계자수 연구 하시던 할아버지 눈에 띄어 이렇게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와있는 손공자수를 보고 있으니 흥미로왔다. 모든 것은 안 보이는 힘들이 있어서 억지로 하는 일은 안 되는 것 같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강제로 우리 문화를 말살 하려 해도 저항이 더 세어졌던 것은 마치 자석끼리 밀어내는 힘과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일본이 우리문화를 그렇게 악랄하게 없애고 싶어 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던거 같다.
문화적 열등감이 아니었나 싶다. 임진왜란때 도공들 다 데려간것도 그렇고 등등.
모르긴 몰라도 옛 우리조상들의 뛰어난 정신 문화로 하여금 일본의 무력을 이끌어낸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한류열풍도 그렇고 한국의 정신문화는 멀리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내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느끼듯 주위에 너무 많이 널려 있는데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그냥 지나쳐버리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어쨌던 점심을 맛있게 먹고 커피를 탔다.

“할아버지 커피드실래예?”

목청껏 소리쳤다.

“뭐?”

“커피예”

“뭐? 뭐라카노 안들린다.”

“커피예 커피”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토끼?”

울다시피 소리질렀다.

“토끼 말고 커피”

그러자 할아버지 말씀

“안 물끼다.”

허걱,

내가 좋아하는 숙모가 오셨다. 나 어릴때 항상 얼굴만 보면 돈 주시고 맛 있는거 사주시던 숙모. 어릴땐 맛있는거 많이 사주는 사람이 젤 좋았다.
커피 마시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하호호 한참 재밌게 이야기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불쑥 나타나시면서

“온나”

“예”

계속 공을 수놓았다.
수놓고 있자니 졸리고 허리도 아팠다.

“할아버지 잠깐만예” 하고 화장실 나오는 척 하며서 2층 혁이 방에 가서 컴터 했다. 한참 오락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불쑥 나타나셨다.

“온나”

“예”

다리도 안 좋아서 잘 걷지도 못하시는 할아버지께서 2층까지 날 잡으러 오신거다.
또 할아버지 옆에서 수놓고 있는데 할아버지 막내딸 현명이이모의 전화가 왔다. 지금 이모의 딸 명희가 집에 가는데 아파트에 아무도 없다고 나보고 잠시 가있어 달라 했다.

“할아버지 명희!”

명희라는 한마디에 할아버지는

“가바라”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 손녀 명희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왈칵 느껴졌다.

이모딸 명희는 이름도 너무 예쁘다. 이모의 이름 현명의 명과 기쁠 희다.
현명이가 준 기쁨이란 뜻으로 이모부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감동적이다.
명희랑 오락하고 놀고 있으니 이모가 왔다.

“니 이거 뭔지 알겠나?”

이모는 자랑스러운 듯 스웨터 하나를 펼쳐들고 있었다.
숫자가 여러개 있었다.

“창이 태어난 날 아이가”

이모는 김이 샌 듯 맞다고 했다.
이모는 아들의 스웨터를 짜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이 방학 때 내려 오면 줄려고 열심히 스웨터를 짜고 있었다.
가슴팍에 8어쩌고 저쩌고 하는 숫자들이 있었는데 태어난 연도 월일 시간을 넣어짜고 있었다. 저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 나도 배워야 겠다. 뜨개질.
온 세상 엄마들이 이모 같으면 다 공부도 잘하고 말 잘들을까?
그래도 자기한테는 자기엄마가 최고 인거 같다.
이렇든 저렇든 지금의 자기가 있게 한분들이 자기 엄마 아빠 니까.
새삼스럽게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함 느껴본다.

이모랑 마켓 다녀오며 촉석루를 가로 질러 왔다. 노을이 지는 남강풍경이 아름다웠다. 진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서울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고 다니던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다니면 모두가 다 아는 사람들이고 다 손에 돈 쥐어 주시고 예뻐 해주셔서 여기가 다 내 땅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예뻐서 다들 나에게 잘해 주시는 줄만 알았다. 얼마 전 까지도
근데 그것이 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덕이었다는 생각이 불과 얼마 전에 들었다.
할아버지 덕이 손자한테 간다고 하더니 그리고 그 덕을 우리들이 받고 있다 생각하니 돌아가신 두분 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명이이모도 내 대학교 다닐 때 내 옷사주면서 그랬다.“내가 느거 할아버지 할머니께 고마워서 느거 한테 잘해준다 아이가”

이모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할아버지 전화가 왔다.

“온나”

“예”

다시 할아버지께 갔다.
수를 마무리 하고나면 여러 스팽글 등으로 장식을 한다.
할아버지께서 스팽글이 들어있는 종이 뭉치를 주셨다.
나는 역시나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왜냐하면 그 종이 뭉치는 내가 외국에서 올때
할아버지 스웨터 하나 사 왔는데 그 스웨터 쌌던 포장지를 잘게 잘라 스팽글을 담고 풀로 마무리 해 놓으셨다.
내 손에 들어왔으면 벌써 휴지통에 들어갔을 놈이 할아버지 손에 들어와 한번 더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아 나도 이놈처럼 이 세상에 요긴하게 쓰이다 갔으면 좋겠다.
스팽글을 할아버지 화장실 가신사이 혼자 할아버지꺼 보고 붙였다.
할아버지 돌아오셔서 내가 자랑했다.

“잘했지예?” 하고 여쭈었더니

“이라모 잘 떨어질낀데...” 하시며 걱정스레 보셨다.

“예?”

“이기 약해서 두 번 세 번 씩 단단히 붙이야 되는데..” 하셨다.

“잉”

“다음꺼 단디 붙이라”

“예”

역시 사람은 자만하면 안된다는걸 배웠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래서 스승님 말을 잘듣고 그 엑기스를 잘 받아야 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엉엉 마지막에 이럴줄이야.
그래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흐뭇했다.

“참 잘만드네 내보다 낫다.”

“그지예”

히히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할아버지 앞어선 철딱서니 없는 손녀임엔 변함이 없다.
공을 들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할무이 이것좀 보이소 내가 했어예, 재은아 바라 내가 했다 아이가 숙모 어디갔노”
공을 들고 한바탕 뛰어다녔다. 하하하 하하하

나도웃고 할아버지도 웃으시고 할머니도 웃으시고 재은이도 웃고
나무들도 웃고 하늘도 웃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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